늦은 감상. 김현탁의 산불 by 아힌

조명이 켜진다. 어두운 곳에 익숙해져 있던 탓일까? 눈이 시리다. 잠시 후 빛에 익숙해진 나는 무대 위에 서 있는 한 사내를 발견한다. 비록 호구로(護具) 온몸을 가리고 있어 겉으로 봐서는 성별을 알 수 없지만 난 그가 사내일 거라 확신했다.
조명에 번뜩이는 장검을 든 그 사내는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거대한 기합소리와 함께 장검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공기의 갈림, 그리고 빛의 번뜩임.
사내의 진지한 모습에 처음의 어수선함은 서서히 사내의 칼부림에 집중되었고, 객석은 차츰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을 인식한 듯 사내는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른다.
그리고 그 사내 뒤쪽으로 무대 위에선 허연 백골들이 쏟아져 내리고, 사내의 뒤쪽으로 헐벗은 여인들이 백골을 주워들기 위해 달려든다. 이것이 '김현탁의 산불'과 첫 만남이었다.


"헉헉 늦었다."
공연 시작은 8시. 그리고 입장은 7시 50분까지라고 했건만…. 극장 앞에선 내 손목에 있던 시계는 친절하게도 8시에서 15분이나 지났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이대로 돌아갈까? 어떻게 할까? 공연 중 입장은 가능한 걸까? 기왕 바람맞은 거 청승맞게 시내나 돌아다닐까? 온갖 생각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녔지만 뭐 여기까지 온 거 내려가서 표를 받고 난 뒤에 생각해보자는 심정으로 길게 이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뭐, 연극은 못 보더라도 표는 받아가야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얼마나 내려갔을까? 슬슬 도착할 때가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 '오오. 아직 입장이 다 안 끝났어?!' 라는 희망을 품은 채 나는 힘차게 내부로 들어갔다.
하지만, 힘차게 열린 문 뒤의 공기는 매우 어수선하고 정리가 전혀 안 된. 다시 말해 무언가 잘못되어 가는 상황이라는 걸 짐작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람들도 가득 찬 객석, 그리고 밖에서 줄을 선 채 입장하지 못하는 사람들. 거기에 이것이 바로 당황한 표정의 표본을 보여주겠다는 듯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스태프들까지.
덕분에 줄도 못 서고 상황만 가늠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듣기로는 아마도 좌석배치에 문제가 생긴 것 같기도 했었지만 확실한 건 아니니….
어째 이놈의 앞길은 이리도 평탄치 못한 걸까 하고 시작된 신세 한탄이 극에 다다르기 직전 한 스태프가 나와 줄 서 있는 이들에게 외치더라.

"모두 들어가서 빈 좌석에 앉아주세요. 공연비는 안 받을게요."

뭐, 내 기억력이 정확한 편이 아닌데다 극을 본지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으니 정확성을 기대하기는 제로. 다만, 저런 내용의 말이었다.
아마도 좌석배치가 어긋났고, 그걸 체크하자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공연은 지체되니 그냥 공짜로 들여 보내 빈 좌석을 메우려는 심산이렷다. 물론 자리가 없어 극장 측에서 마련한 스페셜 좌석인 적당히 자른 스티로폼 깔고 계단에 앉아주시면 감사. 라는 것도 '무료입장' 고객이라면 뭐 감수해야지 않겠느냐는 계산이 깔려있지 않았을까? 물론 나는 자리 잡기도 귀찮고, 계단에 앉을 마음도 없었기에 당당하게 서서 봤다.

그렇게 대충 장내는 정리되고,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사람, 공짜라니까 좋아하며 들어가는 사람, 그리고 원래 공짜인데 뭐가 다르냐 억울하다. 라는 표정의 사람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갔고, 일부 사람들은 바로 등 돌려 나가기도 했다. 나는 그대로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프로그램을 하나 구입해 극장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잖아? 어디까지 갈지 그 끝은 좀 봐야겠어'


이 연극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한극 희곡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차범석 씨의 산불이 바로 그것이다. 뭐, 직접 보지는 못했다는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설마 원작도 이 극과 같을 리가.. 이 작품이 원작과 얼마나 다른지는 아주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 제목이 '김현탁'의 산불인지. 극을 보면 볼수록 내 의혹은 확신으로 굳어져 갔다. 이 극은 '김현탁의 산불'이 아닌 '김현탁의 산불'이었던 것이다.
어째서 연출자의 이름이 저리도 크나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저건 마치 '스티븐 시걸의 복수무정' 같이 제목은 거들뿐 에 불과한 상황이 아닌가?
보통 저런 방법이 쓰이는 큰 이유는 대중에게 친숙하고 유명한 이의 이름을 전면에 노출시킴으로써 관객들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고전적인 낚시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외화 마케팅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방법이고, 가끔은 카메오로 잠깐 얼굴만 비추는 배우를 마치 주연인 듯 속여 사람들을 낚곤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작품성이 좋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에 결국에는 흥행은 참패. 라는 결과를 얻곤 한다. 모 CF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잔재주 부리면 끝이야. 끝!'이랄까.
뭐, 그렇다고 전부 저런 상황은 아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세계관을 가진 경우에도 저런 식으로 전면에 이름을 부각시켜 잡다한 설명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 스토리 전개방식,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방식 등등- 을 이름 하나로 대체할 수 있으니 말이다.

팀 버튼 = 그로테스크한 배경, 음울한 잿빛 세계, 동화 같은 스토리
쿠엔틴 타란티노 = 잘 만든 B급영화
마이클베이 = 헐리웃 오락영화
장예모 = 화면빨

위와 같이 사람의 이름 하나가 공식화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연극계에서 김현탁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을 것이다. - 물론 이는 입구에서 구입한 프로그램을 보고서 나온 결론이다. 그의 전작들을 봤었다면 이번에 이렇게 이런 느낌을 받지 않았겠지…. -
아마도 김현탁 = 현대 예술. 즉 형태의 파괴와 재구성, 곳곳에 난립하는 메타포로 이루어진 실험극 연출가 정도가 아닐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 김현탁이라는 이름이 전면에 걸린 연극은 일종의 경고 표시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원작에 대해 공부해와! 그 속에 담긴 정신과,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찾아! 그렇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해!"
"이건 모두가 즐기는 그런 게 아냐! 예술이라고!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지만 너도 우리의 틀 안에 들어와 예술을 논할 수 있다고!"
"난 예술을 하고 있는 거야 이 극을 연출하고자 내가 얼마나 고뇌했는 줄 알아?"
어쩌고저쩌고….

그저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려 해골을 쏟아내고, 계란을 퍼부으며 불을 지피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극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연출력 역시 어느 정도 상당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고 말이다. 전면 바닥에 설치된 조명을 이용한 배우들의 역동적인 그림자 활극이나, 적절한 표현력은 그가 심심풀이로 극을 만든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나는 관객들을 신경 쓰지 않아. 그들에게 맞추려고 노력할 시간에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따라올 수 있는 사람들만 오라고 해!"라는 예술가적 마인드와 그걸 이렇게 실현시켜버린 그의 배짱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마침 그 극을 볼 때의 내 상황과 겹쳐서 그렇게 보였을까?
나는 디자이너다. 뭐, 이뤄놓은 것도 별로 없고 항상 생각만 가득할 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만들어 나가는 것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디자이너다.
디자인은 '실용적'이어야 라며 '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독단적인 디자인은 예술일 뿐이다. 그리고 동시에 미관상으로도 뛰어나야 한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중이 다수이건 아니면 소수의 충실한 고객들이건, 공감하는 이들을 만들고 그들을 모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차이는 바로 이런 제약과 대중성이다. 물론 한국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클라이언트의 취향'이라는 것도 절대 무시 못할 부분이고….
이런 상황들이 겹치고 겹쳐 대중적이고 평범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결과물을 강요받아 손발이 묶이고 끝도 없이 답답해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하는 상황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극을 보았으니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마치 새장에 갇힌 채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매 한 마리를 보는 기분이었달까? 물론 새장에 갇혀 있는 나로서는 매가 평생 한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는 사실은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겠지만….
물론 지금은 일이 잘 풀려 그런 괴로운 시간은 다 지났지만 다시금 그때를 뒤돌아보곤 한다. 나에게 그런 표현의 자유가 있고, 자신에게 충분히 즐거운 작업을 해야 할 수 기회가 있다면 그들의 틈바구니로 들어갈까? 잠시 고민은 하겠지만 뭐, 답은 '아니오'다.
그저 이런 식으로 그들만의 잔치를 구경한 걸로 족할 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고 허영만 가득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들이 울타리 안에서 바깥세상은 완전히 무시한 채 그렇게 자위하고 있는 동안 난 새로운 잔치를 벌이고 말 것이다. 누구든지 포용할 수 있고, 전혀 부담없이 즐기고 갈 수 있는 진짜 잔치를….
관객이 없다면 예술도 없다.

렛츠리뷰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ahin.egloos.com/tb/3704153 [도움말]

핑백

덧글

덧글 입력 영역

최근 포토로그


북극곰을 도와주세요

블로그 스티커 - 사랑해, 파리